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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탄생 110주년: 쓰다, 이중섭 후기 본문

오늘은 이중섭 전시관에 다녀왔어요.
처음엔 그냥 “이중섭 그림 몇 점 보고 오자” 정도였는데, 전시를 따라 걷다 보니 마음이 점점 조용해지고, 마지막엔 오히려 내가 뭘 쓰고 싶어지는 전시였어요.

1. Write the Love — 쓰다, 사랑을 (엽서화)
전시 초반은 놀랄 만큼 밝았어요.
이중섭이 젊은 시절 연인(훗날 아내)에게 보낸 작은 엽서 그림들. 크기도 9×14cm 정도로 정말 손바닥만 한데, 그 안에 움직임이 꽉 차 있더라고요.

작은 화면이지만 에너지가 커요. 상세하게 묘사한 소는 아닌데, 다리의 힘, 꼬리의 휙- 하는 선. 이런게 있어서 움직임이 바로 전달돼요.
아이를 아주 작게 그린 덕에, 소가 더 커보이고, 장면이 기억의 한 컷 처럼 남아요.

2. Write the Sorrow — 쓰다, 절절함을 (편지화)
두 번째 섹션에서 분위기가 확 바뀌어요.
여긴 “그리움”이 아니라 “사무치는 그리움”이 맞는 말 같았어요.
한국전쟁 시기, 이중섭이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혼자 남았다는 설명을 읽는데, 그 순간부터 작품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편지 속 글씨가 빼곡하고, 그 사이사이에 아이들 그림이 있는데… 웃는 얼굴이 오히려 더 슬퍼요.
그리고 마음이 제일 아팠던 건 일본어로 편지를 썼다는 사실과 종이 한장 구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이에요.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주는데, 오늘은 종이가 한 장밖에 없어서 많이 쓰지 못했다고 한 편지가 너무 마음아팠어요.


3. Etch the Longing — 새기다, 그리움을 (은지화)
세 번째는 완전 다른 세계였어요.
종이가 아니라 담뱃갑 속 은박지, 은지화.
붓으로 그린 게 아니라 긁어서 새긴 선들이라서 그런지, 따뜻한 장면을 봐도 재료가 차갑게 느껴져요.
제가 본 작품 중 ‘복숭아밭에서 노는 가족’은 내용은 너무 따뜻한데, 표면은 찢기고 구겨져 있고 선은 날카로워서…
“그리움이 이렇게 물질화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굉장히 따뜻한 장면인데
재료는 차갑고 거칠어요.
그 대비가 더 마음을 세게 건드려요.

4. Paint the Era — 쓰다, 시대를 (유화 및 드로잉)
그리고 여기서 또 톤이 바뀌어요.
편지/은지화 같은 ‘전달’의 감각에서 벗어나서, 진짜 회화로 넘어오는 느낌.
풍경 그림은 공기가 있었고, 색이 따뜻했어요.
그리고 닭, 게, 아이들 같은 소재가 나오는 작품들은 정말 동화책 같았어요.
특히*‘닭과 게’는 너무 귀여웠고, 가장 기억에 남아요


5. Archive the Legend — 쓰다, 역사로 (신문 아카이브)
다섯 번째는 작품을 보는 게 아니라 기록을 보는 섹션이었어요.
옛 조선일보 지면을 크게 인쇄해서 걸어두었는데, 세로쓰기 한자 신문에 영화 광고(마릴린 먼로 ‘나이아가라’)까지… 지면 자체가 시대였어요.


6. Write My Story — 쓰다, 나의 이야기 (고요한 시간, 나의 편지)
마지막이 제일 좋았어요.
전시가 끝나는 지점에서 “이제 당신 이야기를 쓰라”고 하거든요.
이중섭이 엽서로 사랑을 쓰고, 편지로 그리움을 쓰고, 은지에 그리움을 새겼다면,
마지막은 관람객이 종이에 자기 마음을 써보는 공간이에요.
여기서 저는 한 문장이 떠올랐어요.
“ 감정은 사라지지만, 적힌 마음은 시간을 건너 남는다. ”
전시를 보고 나니, 그림을 봤다기보다 ‘쓰는 마음’을 보고 온 느낌이에요.
사랑이든 그리움이든, 결국 남는 건 “써서 남긴 마음”이더라고요.
한줄평
이중섭은 생전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실패와 이별이 남긴 기록들이 시간이 지나며 작품의 진가를 증명했고, 그래서 더 애절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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